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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花井善吉)원장 창덕비 건립(1930. 9.)

제2대 하나이 원장은 1921년부터 1929년까지 8년 동안 재직하면서 원생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다가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일본식을 강요하던 초대 원장과 달리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이를 상당히 완화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등 일본인이면서도 원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이러한 원장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원생들은 기념비를 세우려 하였으나 본인의 완강한 거절로 세우지 못하고, 1929년 10월 16일 병으로 순직한 그 다음 해 [하나이원장 창덕비 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원생들로부터 모금한 금액이 80원에 달했다.

이렇게 하여 1930년 9월 자혜의원 본관 옆에 하나이원장의 창덕비를 세우고 비의 뒷면에 재임 중의 업적을 새겼다.

해방 후 자유당 정권의 일제 잔재 청산정책에 의해 비석이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원생들이 몰래 땅에 묻어둔 것을 5. 16 이후에 발굴하여 중앙공원 입구에 다시 세웠다가 1988년 원래의 장소로 옮겨 세웠다.

창덕비
비문의 내용

전라남도 소록도자혜의원은 1916년 메이지 천황이 하사한 기금으로 설립된 조선 내에서 유일한 나병원으로서, 1921년 6월에 아리카와토루(蟻川亨)가 초대 원장이 되고, 하나이젠키치(花井善吉)가 제2대 원장이 되어 병원 일을 개혁하며 (환자) 모두를 진심으로 애석히 여겼다.

자애로운 시도에 있어서 그것을 열거하면 의복과 식량의 개선이 그 첫 번째 일이요, 모든 사람에게 통신과 면회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 그 두 번째 일이다.

중증환자를 위해 병실을 새로 만든 것이 그 세 번째 일이요, 두 번에 걸쳐서 병원을 확장한 것이 그 네 번째 일이며, 위안회를 만든 일이 그 다섯 번째 일이다.

정신교육을 실시하여 오락기관을 설치한 것이 그 여섯 번째 일이요, 호조회를 조직한 것이 그 일곱 번째 일이다.

이것으로 700여명이 모두 삶을 즐기며 격리된 세계에서 그 삶을 끝낼 수 있었다. 하나이 씨가 1929년 10월 16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환자 모두가 통곡하면서 그 죽음을 슬퍼하며 서로 상의하여 이 비석을 세운다.

1930년 제3대 원장

야자와준이치로(失澤俊一郞)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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