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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도 간척공사(1962)

오마도 간척공사(1962)

오마도(五馬島)는 해안을 낀 다섯 개의 섬(고발도, 분매도, 오마도, 오동도, 벼루섬)을 연결한 모양이 말(馬)의 형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추진배경

고흥 출신 국회의원 손문경이 조창원 원장에게, '이 공사가 환자들의 자활 정착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음성치유자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정착 사업을 추진하려던 정부 정책과 명분이나 시기가 일치하여 추진할 수 있었다.

공사개요

  • 공사장 현장
  • 매립면적 : 1,070㏊
  • 공사규모 : 고흥군 도양면 봉암반도와 풍양반도에서 각각 오마도와 오동도를 연결하는 둑을 쌓아 농지조성
  • 방 조 제 : 3개소 2,753m(1호 843m, 2호 350m, 3호 1,560m)
  • 공사기간 : 1962. 7. 10. ~ 1988. 12. 29.
  • 총사업비 : 12,951,000,000원

추진목표

  • 1천 정보(330만평, 소록도의 2배 정도 크기)의 농토 조성으로 5만석(2,500여 톤)의 양곡 생산
  • 음성치유자 1천5백 세대(2,500여명)가 정착할 수 있는 터전 마련.

추진경과

  • 기공식 모습
  • 1962. 7. 10. 기공식
  • 1963. 8. 국제워크캠프단 133명, 25일간 공사 참여, 나주 호혜원, 현애원에서도 한 달간 근로대 지원
  • 1963. 12. 1·2·3호 방조제, 바다 속으로 침강
  • 1964. 7. 25. 사업 주체가 전라남도로 이관됨.
  • 1964. 11. 1. 보건사회부 자조근로사업장 책정
  • 1977. 1. 31. 농림수산부 미완공 간척사업지구 책정
  • 1988. 12. 29. 완공

한센병 치유와 일반인이 함께 하는 이상적인 농촌 건설과 약 2,500여 톤의 양곡 생산이 기대되었던 오마도 간척공사는 '내가 살 땅을 내가 만든다.'는 소록도 원생들의 벅찬 꿈을 안고 추진되었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인한 방조제의 침강, 익사사고, 예산부족으로 인한 노임 미지급, 기술 부족, 인근 주민들의 반발 등 현실적인 여건들과 부딪히게 되었고, 언론마저 점차 '오마도 간척공사의 진행이 어렵다'는 내용으로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서 애쓴 원생들의 기대와 관계없이 1964년 7월 25일 결국 사업주체가 전라남도로 넘어가고 말았으며, 1964년 11월 마침내 "나환자들 정착 안 시키겠다!"라는 결정이 알려졌다.

실의에 빠진 원생들은 집권당인 공화당에 "공사가 넘겨지게 된 경위를 밝혀 달라"는 요지의 청원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오마도는 끝내 피와 땀의 보람도 없이 [당신들의 천국]으로 남아, 지금도 바다 건너 소록도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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